FEATURED · 대표 칼럼 ·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헌신이라는 신화

2021-04-25 · 손경모(자유인문학회) ·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 학술 발표 · 자유인문학회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정부를 영원히 감시해야할 의무가 있다. 시민이 파수꾼으로써의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정부는 시민을 예속의 길로 끌고 간다. 정부는 호시탐탐 시민을 예속 상태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사용한다. 기본 소득과 같은 당근을 줄 때도 있고, 적국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채찍으로 시민의 권리를 강제로 제약할 때도 있다.

지난 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루이스 글뤽의 시 '헌신이라는 신화'는 이런 정부의 지배욕을 잘 보여준다. 이 시는 하계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되는 페르세포네 신화를 기반으로 쓰여 있는데, 이 시를 음미해보면 페르세포네로 대표되는 개인의 삶이 어떻게 지옥으로 변하는지 느낄 수 있다. 이 시에서 하데스는 소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지상의 복사판을 지옥에 만들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밤을 끼워 넣어 페르세포네가 어둠에 익숙해지게 배려한다는 내용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하데스의 헌신은 정성스럽다. 소녀의 하계 적응을 위해 지상과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들어 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꺼풀 들어 살펴보면 하데스의 이 같은 헌신은 위선이다. 하데스는 일방적으로 페르세포네를 사랑했지만 그녀를 납치해 하계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하데스의 헌신이 아무리 지극정성이라 하더라도 페르세포네에게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일도 실은 시장(지상)을 모방한 세상에서 한 겹, 한 겹 통제(밤)를 끼워 넣는 방식이다. 국가안보 때문에 어둠이 한 겹, 민주화를 위해 또 한 겹,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또 한 겹, 공중보건을 위해 한 겹. 이렇게 밤을 한 겹씩 끼워 넣다보니 어느새 온 세상을 똑같이 밝게 비추던 법(태양)은 사라지고 통제(어둠)만 남게 되었다. 하데스는 언젠가 페르세포네가 익숙해질 것이라 생각해 밤을 차츰차츰 끼워 넣었듯, 정부도 국민들의 낮을 차츰차츰 밤으로 바꿔왔다. 그러다 결국에는 어둠이 편해질 것이란 속셈이었다.

페르세포네의 어머니이자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는 딸을 잃은 것에 분노하여 대지를 돌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인간들은 올림푸스에 올릴 제사 음식조차 마련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문제 해결을 위해 신들이 하데스를 설득해 페르세포네를 어머니의 품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지상으로 올라갈 생각에 마음이 느슨해진 페르세포네는 하데스가 준 석류 네 알을 무심코 먹었고, 하계의 음식을 먹으면 하계에 있어야하는 법 때문에 지상에 올라가서도 다시 하계로 돌아 가야만하는 운명이 되었다.

지금 경제는 코로나 방역이라는 밤이 또 한 겹 덧 씌워지고 있다. 국민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 경제활동을 하고 햇살을 마음껏 누리려는 꿈을 꾼다. 하지만 정부는 이 밤을 핑계로 하계의 석류인 긴급재난 지원금을 먹였다. 페르세포네가 먹은 그 네 알의 석류 때문에 하계로 돌아가 지상에 겨울이 오듯, 국민이 받은 긴급재난 지원금 때문에 우리 경제는 천천히 통제(밤)에 빠져들 것이다. 올 해의 세금해방일은 전년대비 5일 늘어난 4월 9일인데, 우리는 정부의 의도대로 차츰차츰 명령으로 이뤄진 밤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세상에 하데스가 한 것 같은 그런 헌신은 없다. 공중보건을 위한다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고, 모든 사람들의 행동반경을 추적하고, 또 자영업자의 영업을 제한하고, 그걸 또 보상한다고 지원금을 주는 것들은 실은 모두 명령(밤)에 익숙해지길 바라는 정부의 헌신이다. 국민이 정부에게 완전한 사육을 당할 때까지, 명령에 익숙해질 때까지 밤은 그렇게 한 겹씩, 또 한 겹씩 덧씌워질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페르세포네는 밀의 씨앗을 상징한다. 씨앗이라는 국민경제의 가능성이 통제에 있는 동안은 영원히 싹을 틔우지 못한다. 실업, 출산 등 모든 미래 가능성이 악화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긴 밤이라는 뜻이다. 정부는 한 겹씩 한 겹씩 밤을 끼워 넣고 있다. 대지에서 밀의 씨앗이 싹을 틔우려면 밤이 물러나야 한다. 국민은 정부의 그런 위선적인 헌신을 원하지 않는다. 정말 사랑한다면 어둠 속에서 사육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빛으로 돌려 보내줘야 한다. 사랑은 결코 어둠 속에서 명령으로 할 수 없다.

손경모 (자유인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