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 브릿지경제 시장경제칼럼 · 2019

학교 교육 회복을 위해 본질로 돌아가자

2019-09-02 · 손경모(자유인문학회) · 브릿지경제 · 시장경제칼럼

한국의 학교 교육은 학교 밖 교육에 비해 경쟁력이 매우 낮다. 심지어 2000년대 초반부터는 누구나 돈만 내면 전 국민이 인터넷 강의를 통해 최고급 강의를 평등하게 수강해왔다. 횟수에 제한도 없다. 이런 기술적 혁신은 소위 '쪽집게 과외'로 통하는 학교 밖 교육비에 의한 성적 격차도 압도적으로 줄여왔다. 인터넷에만 접속하면 누가 그 분야 최고 강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지방에 살아서 배우지 못하는 경우도 없고, 돈이 부족해서 배울 수 없는 경우도 없다. 누구나가 정말 노력만 하면 배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런 사회의 변화 앞에 "학교 교육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생겨났다. 고객인 학생들은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 금방 안다. 그래서 똑같은 교육 과정을 학교와 학원(인터넷 강의)에서 중복으로 배우지 않길 원했다.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학교에서는 숙제를 하거나 필요한 다른 것을 했다. 그러자 언제나 선이길 원하는 학교 교육은 궁색한 답변을 냈다. 인성, 도덕, 윤리 등의 알 수 없는 모호한 말들로 학교 교육의 가치를 주장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교육의 평가 척도인 시험 방법을 바꿔버리는 데 이르렀다. 이른바 '수시평가'이다.

본래 승부란 한 순간에 결정되는 법이다. 이것은 어떤 다른 인간적인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다. 사자는 사슴을 한 걸음 앞에서 놓쳐 굶게 되는 것이고, 사슴은 그 한 걸음을 더 내 달려 목숨을 건진다. 지켜보는 제3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불과 5cm에 불과한 거리이지만, 당사자인 사슴과 사자에게는 천당과 지옥만큼 먼 거리다. 정시에서 그 순간 한 두 문제의 차이도 실은 사슴과 사자의 5cm만큼의 차이가 있다. 단지 그 5cm라는 한 순간이 그 이전의 모든 역량을 증명한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 하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시가 도입된 지금은,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 되고 말았다.

이런 수시평가는 고객인 학생을 '비정'하게 만든다. 정시 제도는 한 가지 평가, 즉 "이 지식을 네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에 관해서 모두가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방법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에는 다른 평가가 없다. 점수에는 시험을 치른 학생의 지식 수준이 모두 요약돼 있다. 그래서 학생들이 한 가지 시험 아래 동일한 경쟁을 한다. 하지만 수시는 모든 평가가 모든 사람에게 다르다. 서울 과학고 학생의 영어 점수 100점과 삼천고 학생의 영어 점수 100점은 전혀 다른 점수다. 전국적인 경쟁이 아니라 교내 경쟁의 심화를 통해서 학생들은 친구들과 협력하는 방법이 아니라 좌절시키는 방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이 같은 교육 제도가 누적된 결과, 현재의 교육 제도는 누구도 믿지 못하는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대서특필된 것은 한 고위 공직자의 딸이 온갖 사기와 편법으로 누구나 선망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것이지만, 본질은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많은 학생들이 그보다는 덜하겠지만 그 같은 방법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제도를 통과해 왔다.

교육 제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3불 정책을 폐기하고 다시 정시 위주의 입시제도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지금 벌어지는 코미디 같은 입시 꼼수도 없다. 당당하게 학교에 돈 내고 들어가 정원 외로 의자하나 더 놓으면 된다.

더 나아가서는 학교 교육은 학교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만 추구하면 된다. 학교 밖 교육은 개개 능력의 최대치를 추구한다. 학교 교육은 사회 전체 최저치의 한계를 추구한다. 학교 교육은 사회 전반의 언어 통일과 사회 통합에 목적을 두고 있다. 학교 교육은 다른 학생들이 얼마나 잘하는지가 아니라, 반대로 사회 평균에서 뒤떨어지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학교 교육의 목적은 모든 이들을 '동일한 교육'을 받게 하는 데 있지 않고, 떨어지는 이들을 평균 가까이 이끄는 데 목적이 있다.

손경모 (자유인문학회)

원문: https://viva100.com/article/201909024228947